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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륙교](6) 동백꽃과 수선화
[연륙교](6) 동백꽃과 수선화
  • 오성세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2.06 09:1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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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세 수필가
오성세 수필가
▲ 오성세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국보 180호. 178년 만에 귀향한 추사 김정희의 명품 세한도(歲寒圖)를 제주도립박물관의 특별전시회에서 볼 수 있었다.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에 그린 그림이니 그의 암울했던 마음과 그 당시 제주 겨울 풍경이 어느 정도 그림에 스며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작품의 예술적인 부분이나 다른 가치를 별개로 하면 세한도에서 정말 황량하고 살풍경한 겨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제주의 겨울은 그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너무나 변하여 가히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풍요롭다. 제주 겨울을 가장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노랗게 익어서 절로 군침을 돌게 하는 귤이다. 노지에 자라는 귤뿐 아니라 자세히 보면 반투명 비닐하우스 안에도 갖가지 종류의 귤이나 열대 과일들이 때를 기다리며 향기롭게 익어가고 있다. 비단 귤만이 제주의 겨울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겨울이지만 밭에서 자라는 월동채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양배추, 브로콜리, 무, 당근, 양파와 마늘 그리고 비트와 콜라비 등 어느 하나 우리의 식탁에서 뺄 수 없는 영양가 있는 좋은 식재료다. 또 검은 밤바다를 밝히는 수많은 고기잡이 배들의 휘황한 불빛은 회와 매운탕, 구이와 조림으로 술잔을 부딪치며 우정을 나눈 여러 친구들을 생각나게 해 마음까지도 풍요롭게 한다.

먹거리를 제쳐두고 감성적인 면에서 제주 겨울의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것은 수선화와 동백꽃이다. 물론 개량된 종자로 겨울에 피는 노란 유채꽃도 육지와 다른 제주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늦은 가을 찬바람에 깨어나 온 겨울을 지키는 것은 붉은 동백꽃과 하얗고 노란 수선화다. 추운 겨울에 함께 피어나는 수선화와 동백꽃이지만 여러 면에서 서로 대비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우선 꽃말부터 그렇다. 동백꽃은 색깔별로 비슷한 의미의 여러 꽃말이 있는데 주종인 붉은 동백꽃은 '그대를 사랑합니다'이고 수선화는 '나를 사랑한다'는 나르시시즘( Narcissism : 자기 자신에 애착하는 일 )이다. 동백나무는 사시사철 변함없이 윤기 흐르는 초록잎을 자랑한다. 이르면 11월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이듬 해 봄까지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수선화는 봄부터 여름 내내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초목이 푸르름을 잃어가는 스산한 가을이 되어서야 싹을 틔워 메마른 대지를 깨치고 연약한 파란 새잎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길고 가녀린 잎 속에서 돋아나는 수선화 꽃대도 잎처럼 연약하다. 피지않은 꽃망울의 무게조차 힘겹게 버티던 꽃대는 가까스로 청초한 꽃을 피워보지만 쉬임없이 부는 매몰찬 겨울바람에 더이상 맞서지 못하고 허리를 접어야만 한다.

사철 푸른 나무에서 피어나는 갖가지 색깔의 화려한 동백꽃은 이미 그 자태만으로도 사람의 눈길을 끌지만 바닥에서 자라는 하얀 연노랑의 작은 수선화는 쉽게 시선이 닿지 않는다. 향기가 없는 동백꽃이지만 귀여운 동박새나 직박구리가 꽃 사이로 날아다니며 서로를 이어주니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향기 없는 동백꽃과 달리 수선화의 향기는 얼마나 진하고 매혹적인가! 그토록 진한 향기는 벌과 나비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 누구를 위한 것일까? 홀로 숨죽여 울며 삭인 외로움이 짙은 향기로 배어 나온 것인가? 물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서 꽃이 되었다는 애처로운 나르시스의 전설보다 그림자를 보며 애타는 외로움을 달래려다 꽃이 된 것은 아닐까?

수선화의 자태를 담아낸 이 노래는 그 애절함에도 아름다운 멜로디로 추운 겨울을 잊게 한다.

가곡 수선화 ( 김동명 시 김동진 곡)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르는 애달픈 마음

또한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 다시 죽는 가여운 넋은 가여운 넋은 아닐까?

붙일 곳 없는 정열을 가슴에 깊이 감추이고 찬바람에 쓸쓸이 웃는 적막한 얼굴이여 ~♬ ♬ ♬

동백꽃 중에는 화려하게 활짝 피었다가 꽃잎이 하나 둘 떨어져 꽃이 지는 애기 동백 종류가 있고 반쯤 벌린 봉오리로 은근한 매력을 보이다가 노란 수술과 함께 봉오리 그대로 떨어지는 동백이 있다. 푸른 잎마저 가릴만큼 무성히 피었던 애기 동백 꽃잎이 낱낱이 떨어진 나무밑은 마치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환상적이다. 아름드리 동백나무들이 울창해 동백숲으로 유명한 지심도를 가기 전에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심도 동백숲을 보러 가려면 떨어지는 동백 꽃비를 피하기 위해 우산을 준비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지심도 동백숲의 동백은 애기 동백이 아닌 꽃봉오리로 떨어지는 토종 동백이니 꽃비를 맞을 일은 없다. 꽃의 화려함을 뒤로 하고 한잎 두잎 떨어지기보다 온전한 봉오리 그대로 떨어지는 동백꽃의 모습은 우리나라 꽃 무궁화처럼 가슴 뭉클한 뭔가를 느끼게 한다.

수선화는 꽃잎도 꽃봉오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꽃대에 달린 채 그대로 시들어서 푸른 잎들과 함께 흔적을 지우고 흙으로 돌아간다. 시든 채 매달려있는 꽃에서는 이미 향기가 사라진지 오래고 청초했던 그 자태도 소박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낙화를 노래한 이형기 시인의 시를 되뇌어본다. 꽃대와의 질긴 인연을 끊어내지 못하고 이별이 아쉬운 듯 매달린 채 시들어 가는 꽃은 마치 늙어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꽃잎으로 떨어지든 봉오리로 떨어지든 떨어지지 않고 사라지든 모두 자연의 섭리이다. 무심한 시간에 기대어 살며 또 하루를 보낸다.

가곡 시간에 기대어 ( 최진 시. 곡 )

♬♬♬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소원해져 버린 우리의 관계도 사랑하오

변해버린 그대 모습 그리워하고 또 잊어야하는 그 시간에 기댄 우리

​사랑하오 세상이 하얗게 져도 덤으로 사는 반복된 하루가 난 기억하오 난 추억하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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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2024-03-13 20:55:22
제주의 겨울 ! 역시 동백과 수선화 입니다.

실비아 2024-02-08 09:42:01
동백꽃과 수선화 유채꽃 제주의 대표 꽃
가곡 몇 소절에 흥얼흥얼~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갈매기 2024-02-06 18:17:43
동백과 수선화가 한창인
제주의 겨울 풍경 ~
눈앞에 그려집니다 !

jhisjh 2024-02-06 12:14:41
새해 아침에는 제주 한림공원에 갔었다
쌀쌀한 날씨 가운데 붉은 동백꽃은 한창이었고 금잔옥대 수선화는 이제 막 피기 시작했었다
동백 한송이 떨어질때 그 아깝고 서운한 마음에 가슴속에서 쿵 소리가 나고 얼굴은 동백처럼 붉어지는듯 했다
이제 다시금 가면 들판 가득히 노란 수선화의 향이 가득 하겠지.....

새빛 2024-02-06 11:27:41
오늘 아침 동백과 수선화가 풍기는 이미지로 봄을 성큼 맞이한 듯 상쾌한 기분입니다.
게다가 가곡 한 소절 시 한 수는 덤이었네요 . ^-^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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